연해주에 퍼져가는 십자가의 복음

담임목사 곽수관

저는 지난 2월 27일(월)부터 3월 2일(목)까지 고신총회선교회(KPM) 현지이사회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에 다녀왔습니다.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는 “동토의 땅”은 인천공항에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국적기는 북한 공해를 통과할 수 있어 우리 비행기보다 1시간 정도 덜 걸린다고 합니다. 시베리아의 가장 동쪽인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연해주(沿海州)의 수도인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극동함대의 사령부가 있는 해군기지이며,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북빙양 항로의 종점이며, 모스크바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철도의 종점인 중요 도시였지만 한국의 소도시처럼 조용하고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이고, 고려인들의 삶의 애환이 남아있고, 일제 강점기에 맞서 안중근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의 유적들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우리에겐 남의 땅 같지 않았습니다. 블라디보스톡은 지금도 북한과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어 고려인들과 조선족들과 북한주민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쪽 바다는 부동항이지만 다른 쪽은 꽁꽁 얼어 그 위를 자동차로 달려갈 수 있는 땅, 옛날 미국과 함께 세계를 움직였던 소련의 위용은 역사 속으로 다 사라지고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절반 정도나 될까... 오래된 건물들 속에서 춥게 살고 있는 그들... 눈을 녹이려는 시커먼 염화칼슘으로 얼룩진 거리에는 일제 중고 승용차와 현대-대우 중고버스들로 매연을 뿜고 있었습니다.

북방선교의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우리 교단의 연해주 선교는 의외로 너무 늦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희를 처음 맞아 준 선교사님은 다른 교단의 선교사로 27년여를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든든한 교회를 세우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저희 KPM선교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약 112km 떨어진 우수리스크(Ussuriysk) 지역에 계신 전문인선교사(은퇴 장로님, 국문학자) 한분과 이제 파송된 지 2년 정도 된 젊은 선교사님 두 가정이 <고려인문화센터>와 교회개척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선교지를 둘러보면서 동토의 땅 연해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인 이철신-김지영선교사는 저희 교회 협력선교사로 2015년에 파송을 받아 현재 <구원의반석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2003년에 통합측 선교사가 개척을 시작하였으나 이단에 빠져 흔들리다가 2013년 저희 교단 엄궁교회(부산)가 건물을 구입하여 새롭게 개척한 교회입니다. 현재 고려인과 조선족들과 러시아인 등 6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러시아와 중국과 북한 선교의 비전을 품고 어린이사역, 아버지학교, 구제사역 등을 열심히 펼쳐가고 있었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아직 초등학생들인 세 아이들이 아빠의 선교 동역자로 러시아어를 배워가며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누추한 움막 같은 건물에서 쥐와 바퀴벌레들과 함께 뒹굴면서도 러시아 노숙자들을 섬기며 행복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준 선교사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몇 번 교회로 맞아 들여 샤워를 시키고 빵과 스프로 대접했던 어느 노숙자에게 휴대폰까지 도난당하면서도 그들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 가슴 아프게 남았습니다. 선두교회의 협력선교사인 이 분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세요!

또 한 가정은 <언약교회>의 김현철-나타샤선교사입니다. 러시아 선교를 위해 러시아인과 결혼한 분입니다. 66세가 된 고려인 여전도사님이 개척한 교회를 맡아 20여명의 교인들과 15명 정도의 주일학교 아이들을 섬기고 계셨습니다. 오래된 유치원 건물을 구입하였지만 따뜻한 난로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예배당에서 고려인 여전도사님의 개척 간증을 듣는 동안 우리는 춥다는 표정조차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또 한 선교사 부부는 북한선교의 열정을 갖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준비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걸리면 죽음이 확실한 북한에 들어가 3개월 정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삶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발각되기 전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는 전략으로 선교할 계획이라고 하루속히 러시아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자기 이름조차도 알려지길 원치 않으며 하나님께서 가슴 속에 불타게 하신 북한선교의 열정 하나로 생명조차 돌보지 않고 사명의 길을 가고 있는 그 해맑은 선교사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선교지에 방문해 보면 우리의 편안함이 오히려 죄처럼 느껴집니다. 호주머니에 갖고 간 돈을 다 털어 주고 와도 너무나 죄송할 뿐입니다. 우리가 새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우리 교회당과 교육관은 그분들에게는 정말 천국 같은 곳입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젊은이들이 N포 시대를 산다고 해도 선교지의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은 정말 천국입니다. 정말 힘든 그곳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그 땅에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온 삶을 드리고 있는 선교사님들... 130여년 전에도 가난과 무지로 소망 없던 이 땅, 세계 속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땅 조선을 품고 삶을 드렸던 그분들처럼, 지금 우리 선교사님들이 동토의 땅 연해주에서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