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없는 어버이날

담임목사 곽수관

처음으로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2012년 여름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시고, 3년만에 어머니께서도 그 뒤를 이어 작년 여름에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두 분 모두 고달픈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늘 사모하고 그리워하던 본향에 들어가신 것이었지만, 그래서 분명 행복한 승리의 길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연이어 보내드려야 하는 저희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언제나 거기 계셨기에 언제까지나 계실 줄 알았건만 이제는 찾아도 다시 뵐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할 때 가장 감사한 일은 저희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그리 알콩달콩 정이 많으신 분은 아니셨던 것 같습니다. 엄격한 유교 집안의 독자로서, 제 기억으로는 제가 중3때 돌아가시기까지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셨던 할아버지 밑에서, 예수 믿는다고 온갖 핍박을 받으며 성장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만큼 자상하신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겠지요. 그나마 농부의 아들이셨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신 덕분에 제가 8살 때 고향을 떠나 독립된 도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저희 가정은 신앙생활에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어린 시절의 중심에는 언제나 교회가 있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은 교회 친구들이었고 가장 행복했던 추억도 교회와 함께였습니다. 저에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보여 주셨고 심어 주신 부모님의 사랑과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카톨릭 수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스페인, 이태리 등지에서 오신 신부님들과 한국인 수사(전도사?)님들과 함께 서양식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신학적인 논쟁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고국을 떠나 선교사로 와서 사랑을 실천하시는 그분들의 삶을 보며 세상을 향한 새로운 꿈에 눈을 뜨게 되고, 또 그분들 속에서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 준 것은 생활부 선배들이 아니라 그 신부님들이었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마다 우리의 다정한 친구와 상담자가 되어 준 분들이 그들이었으니 저는 참 행복한 고교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까지 11년 동안, 서울에서의 대학생활, 부산에서의 신학대학원, 그리고 부산과 서울에서의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아니 결혼 후에도 미국에서 살면서 어버이날이나 어버이주일을 맞을 때마다 저는 늘 부모님을 떠나 따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들은 늘 제 삶에 함께 계셨습니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할지라도 전화기 너머로 언제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장남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함께 모시고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년에 두 번 명절 때와 두 분의 생신 때 외에는 한 지붕 아래 함께 밤을 보낸 날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저희 집에 모시고 있을 때에도 다시 금방 일어나실 줄 알았었기에 하루하루가 그렇게 소중한 시간인 줄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아침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신 후 제가 급히 김포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어머니도 고관절 수술을 하신 후에 끝내 집에 돌아오시지 못하셨습니다. 너무 오래 고생하시지 않고 천국 가신 것은 감사하지만,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그 은혜에 제대로 감사조차 고백하지 못한 채 보내 드린 것은 언제나 크나큰 아픔입니다.

올해 어버이날은 그래서 어버이 없는 어버이날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아직 많은 어버이들이 계십니다! 아직도 건강하신 아버님(장인어른)이 계셔서 감사합니다! 원로목사님 내외분을 부모님처럼 가까이 모실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우리 많은 성도님들이 저의 아버님, 어머님으로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 70세가 지나신 분들만도 300여명이 넘습니다. 부디 모든 분들이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모님께 못다 갚은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며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 잊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잠시라도 더 곁에 계실 때,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섬겨 드립시다! 또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더욱 행복하고 기쁨 넘치는 삶을 누리십시오! 언제라도 내 앞에 열릴 천국을 소망하며 늘 준비된 모습으로 살아가십시오!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다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