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법
곽수관목사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이 9월 28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2012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하여 시작된 이 법은 한 마디로 “청탁금지법”입니다. 공직자 및 그에 준하는 공공기관 임직원이나 언론 종사자, 국공립 사립학교 임직원 및 그 배우자의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입니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접대 문화와 청탁 관행을 근절하고, 투명한 사회, 행복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법이기에 국민 대다수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아 잘 정착되기까지는 꽤 혼란이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투명성기구>는 해마다 국가별 부패인식지수, 즉 국가청렴도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는데, 한국은 2015년에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조사대상 168개국 중에서 37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깨끗한 나라인가 놀랄 만한 순위이지만, OECD 가입 국가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상당히 하위권이고, 56점은 사실 낙제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상위 국가들인 덴마크(91점), 핀란드(90점), 스웨덴(89점)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낮은 점수이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85점), 홍콩(75점), 일본(75점)에 비해서도 무척 낮은 상황입니다. 세계 최하위는 북한과 소말리아로 각각 8점이었습니다. 70점대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로, 50점대는 “절대부패에서 벗어난 상태”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선진국이란 단지 국민소득이 높고 경제적으로 부요한 나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에서 존경받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훨씬 더 투명하고 정직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시행되는 <김영란법>이 본래의 취지대로 우리 사회를 더욱 청렴하고 깨끗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이번 법률이 제정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지나치게 비합리적으로 엄격한 규제가 많습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하이패스 통과 속도를 꼭 30km로 제한해야 하는지, 합법주차에 대한 대안도 없이 여기저기 주차위반 경고 사인만 세워두면 되는지, 아무도 지키지도 않고 지킬 필요도 없어 보이는 지점의 지나친 속도제한이나 신호등 등은 우리에게 법에 대한 무감각증만 키워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극소수의 “착한” 사람들만 어리석게(?) 지키고 대다수의 “똑똑한” 사람들은 지킬 필요가 없는 법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에, 무척 엄격한 김영란법의 규정들이 과연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 염려가 됩니다.
사회가 깨끗해지고 정상(正常)과 합리성이 이끌어가는 건강한 국가가 되는 길은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만의 몫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비합리를 바로 잡기 위하여 이왕에 법이라는 잣대를 사용하기로 한 이상, 국민 모두가 일상생활 곳곳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배우고 습관화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하거나 놀 때에 더치페이(Dutch Pay)로 각자의 몫을 각자가 계산하는 것이 자기들에게는 당연한 문화라고 하는 21살 아들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른들 사회에서는 다소 정이 없어 보이는 그들의 문화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을 보이고 앞장 서야 하는 것은 사명입니다. 저희 선두교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와 세상을 꿈꾸면서 10월 한 달 동안 “정직”을 주제로 기도하며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으려면 익숙한 거짓과 잘못된 관행들을 우리의 삶에서 빨리 털어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난 날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다가 “권위” 자체를 잃어버렸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부정부패를 몰아내려다가 윗사람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도 대접할 수 없는 차가운 세상을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10월호 <행복한 세상> 칼럼과 함께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