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동산 목회 칼럼 2010-12-19> 곽수관 목사
성탄의 추억
현대는 추억을 상실해가는 시대입니다. 요즘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과연 훗날 어떤 추억들이 남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나 텔레비전 속의 가수들의 노래와 춤들?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하던 게임의 장면들? 밤 늦게까지 각종 학원가를 누비며 다니던 기억들? 전에는 그래도 성탄절을 상당히 남겨두고 방학을 주어 성탄을 맞는 흥분과 설렘을 더해 주었는데 최근에는 학교마저 성탄절의 추억들을 빼앗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첫 10년을 보내면서 기억의 앨범 속에서 성탄의 추억들을 다시 꺼내 봅니다.
성탄을 두 달쯤 앞두고는 학생 찬양대의 성탄절 칸타타 준비가 시작됩니다. 시내버스도 변변찮고 통행 금지도 있었지만 학기말 시험의 부담감 속에서도 예수님을 맞을 준비는 그렇게 찬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의 은혜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지금도 중학교 때 연습했던 찬양곡의 메아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연탄 난로를 피워놓고 시린 손을 녹여가며 찬양 연습을 하다가 간식으로 먹었던 “호빵”이나 큰 냄비에 함께 끓여먹던 라면의 기막힌 맛은 잊을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축제였습니다.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진 성탄축하발표회는 다양한 달란트와 솜씨를 어른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뽐내는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한 중창들과 성극들은 그것을 준비하기까지의 숱한 만남과 사귐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때도 끝날 즈음에는 산타클로스가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순서가 끝나면 각 기관별로 그날밤은 그대로 올나잇(All Night)이었습니다. 각자가 미리 준비한 선물 속에는 여러 가지 짓궂은 벌칙들이 적혀 있었고 그렇게 선물 교환을 하는 동안 밖에는 흰눈이 새록새록 쌓여가면 그때는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새벽 두세시가 되면 여전도회에서 끓여주는 떡국을 몇 그릇씩 비우고 각 팀을 나누어 새벽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날도 밤을 지켰던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에게 찾아가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불렀던 천사들처럼, 밤을 새워 수고하시는 파출소와 관공서에서 먼저 시작한 찬송은 성도들의 가정이 있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깨우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외침이었습니다. 잠들었던 가정들이 찬송 소리에 전등을 밝히고 나와 함께 부르며 미리 준비해 놓았던 과자와 각종 선물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것들은 다시 교회에 모아져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이웃들에게 보내졌지요.) 잘 하면 더 큰 정성으로 따끈한 떡국을 한번 더 먹거나 맛있는 만두를 빚어주신 가정들도 있었습니다. 참,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새벽송을 돌며 졸다가 넘어져 다친 친구들도 있었지요. 다시 교회에 돌아와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다가 드렸던 성탄감사예배는 비몽사몽으로 헤맬 때도 많았지만 우리의 성탄절은 그렇게 화려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집안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굴뚝으로 들어온 산타 클로스가 놓고 가는 큰 선물은 없었지만, 해마다 성탄절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행복하게 했습니다.
성탄절을 맞을 때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성탄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잃어버린 성탄의 기쁨을 되찾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능한 한 모든 아이들이 성탄의 기쁨과 축복에 참여하게 해 보라고 담당 교역자들을 독려해 보지만, 성탄이 가까워져도 교회에 옛날처럼 그렇게 그들의 발걸음이 빈번해지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마음이 아픕니다. 미국에서는 그래도 한 해 동안 고마웠던 분들의 사랑을 기억하며 열심히 크리스마스 카드를 적어 보내고, 온 동네를 골목마다 크리스마스로 장식해 놓은 곳을 아이들과 함께 일부러 찾아 탄성을 지르며 구경도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네 번째로 성탄절을 맞지만 우린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기 집 정원과 거실을 커다란 트리와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놓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그 축복을 한껏 누릴 수 있도록 자신들은 오히려 집안의 불을 어둡게 만들어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고 축하하려는 미국인들의 여유가 잠깐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